고려는 중세 동아시아 해양 네트워크에서 활발한 해상무역 국가였다. 벽란도를 중심으로 송·원·일본과 무역을 전개했고, 조운제도, 조창 설치, 해적 대응 등 체계적 해양정책을 펼쳤다. 이는 고려 경제와 문화 발전의 핵심 동력 중 하나였다.이 글에서는 고려의 바닷길 개척, 무역과 해양정책에 대해 작성하겠다.
동북아 해상 네트워크의 중심, 고려의 무역항과 무역품
고려는 항해와 무역이 활발한 해양 국가로, 동북아시아 무역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10~14세기에 걸쳐 중국 송·요·금·원, 그리고 일본, 동남아시아까지 다양한 국가들과 해상 교역을 활발히 전개하며, 국제적인 중개무역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무역항은 벽란도(현재의 강화도 일대)였다. 벽란도는 황해를 통해 외국 선박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었고, 수도 개경과 가까워 물류의 중심으로 기능하였다. 벽란도에는 외국 상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국제무역항의 기능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국가가 공식적으로 통제하고 보호하는 항구로 지정되어 안정적인 교역 환경이 조성되었다.
고려의 대표적 수출품은 다음과 같다:
-인삼, 금, 은, 인주(붉은 염료), 종이, 명주
-청자, 금속기, 한지 등 고급 공예품
-노비와 말 등 실용자원 (특히 원나라 무역 시기)
반면 수입품으로는 비단, 향료, 약재, 서적, 도자기, 철제 무기류, 문물 등이 있었으며, 특히 송나라와의 교역에서는 선진 기술과 학문, 문화 수입도 활발했다.
고려는 선박 제작 기술도 발달하여, 대형 해상 운송선이나 전투선을 자국에서 건조할 수 있었고, 조운선과 상선, 군선이 체계적으로 운용되었다. 무역은 개인 상인의 자율적인 참여도 있었지만, 왕실과 중앙정부가 직접 무역을 주도하거나 관리하는 경우도 많았다.
고려의 해양정책과 조운 시스템, 해적 대응 전략
고려는 해상 무역을 뒷받침하기 위해 조운제도와 조창 설치, 해양 행정체계 정비 등 체계적 해양정책을 시행했다. 조운은 지방에서 거둔 세곡을 수도 개경으로 해로를 통해 운반하는 제도로, 고려 해양활동의 핵심 인프라였다.
조운에 사용된 조운선은 평저선 구조로 얕은 해안에서도 운항이 가능하였고, 강 하류나 연안항로를 따라 이동하며, 영산강, 금강, 낙동강 하류 등 주요 조창이 설치된 지역과 연결되었다.
대표적인 조창으로는 염창, 예성강 조창, 흥원창 등이 있으며, 이들은 단순한 곡물 보관소가 아니라 물류 거점이자 상업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이 외에도 고려는 다음과 같은 정책으로 해양활동을 지원하였다:
-해군 운용 및 해적 대응 조직 강화: 고려 중기 이후에는 왜구의 침입이 빈번해지자, 전라·경상도 해안에 수군 주둔 및 해도감 설치
-세곡 운송을 위한 선박 등록 및 규격화: 민간 선박의 조운 참여 제한, 국영 운송체계 확립
-항구 세관의 설치 및 관세 징수: 벽란도를 포함한 주요 항구에 세관 설치
특히 13세기 몽골 침입기와 이후 원 간섭기에는 해상 방어력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고, 동남해안의 수군이 왜구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후 공민왕 대에는 해도감이라는 전담 해양 부서가 설치되어 해로 관리와 해적 단속을 국가가 체계적으로 시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단순히 방어를 넘어서 국가의 통상과 조세 체계 안정화, 나아가 국가재정 확보와 무역 기반 구축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고려 해상무역의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파급 효과
고려의 해상무역은 단순한 경제활동을 넘어, 문화 교류와 기술 전파, 국제 질서 내 위상 확보라는 다층적 의미를 지녔다. 고려는 동북아시아 해양 네트워크 속에서 자국 중심의 무역 루트를 개척하며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였고, 자체 문명과 외래 문명을 융합한 독특한 문화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특히 청자 기술의 발전은 고려 해양활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고려는 송나라와의 교역을 통해 요식도구와 고급 도자기 수요를 파악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적 수준의 비취색 고려청자를 발전시켰다. 이는 단순한 수출품이 아니라 고려 예술미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또한 고려의 국제 무역은 외국인의 고려 유입과 정착도 촉진하였다. 벽란도에는 아랍 상인, 송나라 상인, 일본 사절 등이 드나들며, 다문화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고, 이는 고려 문화의 개방성과 다양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고려는 이슬람 세계와의 교역을 통해 천문학, 의학, 향료 사용 등 다양한 문물을 받아들였다.
무역은 또 다른 한편으로 국가의 재정 기반 강화와 사회계층 분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국제무역에 종사한 상인층, 운송업자, 조운관료 등 신흥 세력의 부상은 기존 귀족 중심 체제에 일정한 도전이 되기도 했다.
고려의 해상무역은 단순한 경제활동이 아니라, 정치·군사·문화·기술 모든 영역에서 고려 사회를 역동적으로 만든 중심 축이었다.
고려 해양활동, 바다를 통해 세계로 나아간 중세 국가
고려는 내륙 국가라는 통념을 깨고, 동북아 해상 네트워크의 핵심국가로 기능한 해양 국가였다. 벽란도를 중심으로 한 무역 시스템, 조운과 조창을 바탕으로 한 물류 인프라, 해군과 행정조직을 통한 해양 통제는 고려를 자립적이고도 개방적인 국가로 만들었다.
고려의 해상무역은 단순한 상품 교환이 아니라, 기술과 문화, 인재와 문명의 이동을 촉진한 종합적 교류의 장이었으며, 이는 고려 사회를 더욱 풍요롭고 역동적으로 만들었다.
바다를 통해 세계와 소통했던 고려의 해양활동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해양 강국 정체성과도 연결되는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참고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274265&cid=62046&categoryId=62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