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학회 역사와 역할, 한글을 지켜낸 학자들
조선어학회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조직된 대표적인 언어 독립운동 단체였다. 이들은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우리말 사전 편찬 등 한글 체계를 정립하며 민족 정체성의 뿌리를 지켜냈고, 일제의 탄압에도 불굴의 의지로 언어를 통한 저항운동을 이끌었다. 이 글에서는 조선어학회 역사와 역할, 한글을 지켜낸 학자들에 대해 작성하겠다.
한글 말살 정책과 조선어학회의 결성
1910년 일제가 한반도를 강제 병합하면서, 조선은 정치적 주권뿐 아니라 언어와 문화까지 침탈당하는 위기에 직면했다. 일본은 조선인을 ‘황국 신민’으로 동화시키기 위해 한국어를 말살하고 일본어를 강제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일본어 교육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이 개편되었고, 공문서와 출판물도 점차 일본어로만 발행되었다. 특히 1930년대 들어 ‘내선일체’ 정책이 강화되면서 조선어 사용은 사상범 취급을 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지식인들의 조직적 대응이 시작되었다. 1921년에는 주시경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한글 연구회’를 창립하였고, 1931년 그 이름을 ‘조선어학회’로 바꾸어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이 단체는 단순한 언어학 연구기관이 아니라, 민족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조선어를 보존·계승하고자 한 운동 단체였다.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학문적 목적, 교육 실천, 민족의식 고취라는 세 가지 방향으로 나아갔다. 조직을 이끈 인물들에는 이윤재, 최현배, 이극로, 김윤경, 권덕규, 한징 등 당대 최고의 언어학자들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학문과 실천, 교육과 운동을 함께 끌고 간 언어운동가들이자 독립운동가였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조선말 사전 편찬
조선어학회의 첫 번째 큰 성과는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제정과 발표였다. 조선 초등 교육에서조차 일관된 문법이나 철자 규칙이 없어 혼란이 컸던 당시, 조선어학회는 과학적이고 표준화된 한글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한 사명감을 느끼고 통일안을 추진했다.
이 통일안은 현대 한글 맞춤법의 원형이 된 것으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된소리 표기와 된소리 구분 기준 제시
-사이시옷, 겹받침 사용 방식 정립
-띄어쓰기 기준의 최초 공식화
-방언이 아닌 공통어 중심의 표준어 설정
이 통일안은 이후 전국적인 보급을 통해 교육 현장과 출판계에 표준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맞춤법 통일을 통해 언어 공동체의 정체성이 강화되었고, 이는 조선인의 자각과 자주정신 고취로 이어졌다.
다음으로 조선어학회가 집중한 작업은 ‘조선말 큰사전’의 편찬이었다. 이는 단순한 어휘 정리 수준이 아니라, 민족 언어유산을 집대성하고 후대에 전승하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방언과 속담,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까지 수집하고 분류하였다. 문헌 분석과 구술 채록이 동시에 진행되었고, 작업에는 수십 명의 자원자와 학자들이 참여했다.
사전 작업은 치밀하게 진행되었으나, 일제의 언론 검열과 출판 제한, 감시 속에서 대부분 비밀리에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원고는 여러 장소에 나누어 보관되었고, 작업자는 수시로 거처를 옮기며 불온 서적 혐의를 피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회는 1940년대 초까지 약 16,000여 개 이상의 단어를 수록한 초안을 완성하였다.
조선어학회사건과 해방 후의 계승
조선어학회의 이러한 활동은 일제 당국에게는 ‘민족주의의 발로’로 간주되어 극심한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1942년, 일제는 ‘조선어학회사건’을 조작하여 이윤재, 최현배, 김윤경 등 33명의 학자들을 체포하였다. 이들은 고문과 가혹한 심문을 당했고, 그중 이윤재는 순국하였다. 사전 원고는 압수되어 파기 위기에 놓였고,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완전히 중단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광복 이후인 1945년, 생존자들과 후학들이 모여 조선어학회를 다시 조직하였고, 1949년부터는 ‘한글학회’라는 이름으로 재출범하였다. 당시 최현배를 중심으로 조선말 큰사전의 원고를 복원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으며, 결국 1957년, 6권 분량의 ‘큰사전’이 완간되었다. 이 사전은 이후 우리말의 대표적 표준사전으로 인정받게 된다.
한글학회는 오늘날까지도 맞춤법 개정, 외래어 표기법 정비, 국어 순화 운동, 국어 교과서 개발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는 조선어학회가 남긴 사명과 유산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것이며, 민족 언어 정체성의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언어로 민족을 지킨 사람들, 조선어학회의 의미
조선어학회는 단지 국어학 연구 단체가 아니었다. 그들은 조선의 말과 글을 지키고, 민족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한 언어 독립운동의 전위대였다. 맞춤법을 통일하고 사전을 만들며, 그들은 글자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정신과 문화, 역사의 근간임을 증명했다.
오늘날 우리가 표준화된 한글을 배우고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집념과 희생 위에 세워진 결과다. 조선어학회의 역사는 민족의 언어를 지킨 지성의 투쟁이자, 말과 글이 독립운동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훈이다.
우리는 이제, 그들의 헌신과 지혜를 바탕으로 한글의 가치를 더 넓은 세계로 확산시켜야 할 책무가 있다. 조선어학회는 우리의 과거이자, 언어의 미래를 여는 열쇠였다.
참고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0002&cid=62048&categoryId=62048